[자궁근종 개복수술2] 수술이 내게 준 교훈

그렇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과 싸워 새벽을 맞았을 무렵 나는 너무 심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곧바로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흔들림을 멈추는 약을 맞았지만 전혀 네버 효과가 없었다.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말하고 주사를 놓으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예전에 주사를 맞은 지 얼마 안 돼서 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그래서 고통을 참은 듯 흔들림도 민낯으로 참았다.일단 엄마에게 말하고 머리맡에 휴지와 비닐봉지를 놓았다. 엄마도 나도 익숙했다. 내가 왜 토하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나는 중학생 때부터 생리통이 엄청 심했어. 얼마나 심각한지 매달 토했어. 내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너보다 심한 생리통 환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의 #생리통 구토는 조금 특이했는데 일단 생리 시작 후 흔들림과 함께 구토를 하는데 이때는 아무리 약을 먹어도 구토가 풀리지 않는다. 응급실에 가서 주사를 놔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구토를 멈추는 주사를 맞고 1분이라도 자면 바로 약효가 돌아 구토를 멈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는 배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아파.아무리 내 몸이라고 해도, 왜 이렇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어.. 나도 궁금해 정말 ㅠㅠ 아무튼 그래서 그때부터 난 구토요이스타토! 2~3분 간격으로 위액과 위산을 토하는데 처음에는 신 게 나오고 나중에는 시큼하고 염산 수준의 산성 맛이 났다.토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람이 구토할 때 뱃근육을 그렇게 많이 쓰게 될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우웩우웩 할 때마다 수술 부위가 당겨져 혹시 꼬인 곳이 터질까 걱정도 됐다.누워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변끈은 붙어있고 왠지 소변은 안나오고 몸은 부어있고 배가 갈라진 수술부위는 아프고 위까지 난리치며 토하고있어 ㅋㅋㅋ 너무 자기연민에 빠질뻔했어.그렇게 약 4~5시간 토하자 사람들이 다 피곤해 무심코 잠이 들었다.약 2~30분 잔 뒤 배가 많이 가라앉아 그 이후로는 토하지 않았다.수술 당일만 고생!(시간으로 치면 12시간 정도) 정말 그걸 조금 잤다고 갑자기 소변도 잘 나오고 붓기도 빠진다. 역시 수술하고 나서는 잠이 최고(눈물).사실 이 길을 알고 선생님께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거부당한다.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까다로운 환자였네.이게 아니야, 저게 아니야, 원자력병원 간호사 선생님들 죄송해요… 26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수술을 받고 4시 10분에 회복실을 나왔는데 27일 오전 11시쯤부터 걸었어요 ㅋㅋ(엄마 너무 스파르타) 그리고 27일에 전공의 선생님이 오셨는데 제 무통주사를 보자마자 “무통주사는 거의 안들어와서 구토증상이 심했나봐요”라고 금방 알았어요. 나는 솔직히 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왔을 때 “너냐? -_- “어제 나한테 주사 놓기를 거부한 당직의가?” 했더니 선생님이 아무 효과도 없는데 참고 계신다는 말 한마디에 삐친 걸 훌쩍 녹음(단순) 그리고 27일부터 열심히 걸었다. 산부인과 외래진료소에 가니 외래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어제 개복수술을 하고 벌써 걷느냐고 역시 젊으니까 회복이 빠르다며 신기해하셨다. 걷는…그렇다고는 하지만.. 링거대를 잡고 복대하고 천천히 거북이처럼 걷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수술 당일은 정말 내 인생 최악의 지옥 체험이었어. 그러나 그 고통으로 깨달은 것도 있다.원자력병원의 영문명은 ‘Korea Cancer Center Hospital’이다. Cancer는 암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한국암센터. 회복 중에 병원을 많이 걸었는데 암 환자로 보이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사실 내 친구 엄마도 우리가 20살 때 #원자력병원에서 마지막 항암치료를 하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암 환자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 하지만 분명 수술 당일 내가 겪은 아픔보다는 더 할 것이다. 이 생각까지 이르렀으니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런 고통을 매 순간 느껴야 하다니 얼마나 아플까”라며 나는 원자력병원 1층 로비를 매일 밤 걸으며 이 병원에서 눈을 감은 모든 암 환자의 명복을 빌었다. 부디 앞으로는 좋은 치료제가 나와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다음 번에는 Q&A